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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Me & Family)70

내 얼굴의 변화 누구나 커 가면서 얼굴이 조금씩 변화하지만 매 순간의 추억은 소중하기만 하다.첫사진은 초등학교때. 어링때 머리를 길러 본 적이 없다. 늘 스포츠 스타일이라던 짧은 머리. 초등학교 친구들도 내 이름보다 짧은 머리 아이로 기억을 한다.^^고등학교 3학년때 사진. 눈이 무섭다.ㅎㅎ대학 졸업즈음의 사진. 왜 표정이 다 저러냐?^^ 소중하고 되돌아 가고 싶은 그런 때이네요. 2008. 9. 9.
상장 잊었던 추억을 되새기는것이 설레이기까지 하다.^^초등학교 2학년떄전국그림그리기대회에서 특선을 했는데 월요일 조회시간에 단상에 올라 교장선생님께 직접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메달도 받았는데....어디갔는지....못찾겠다. 요즘이야 상받을 일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집안이 들썩했던 큰일이었던것으로 기억이 된다.상장이 모두 그림대회 상장이네?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보다. 2008. 9. 9.
40년전 유치원 졸업 앨범 사진 오늘 부모님댁에 갔다가 소중한 것들을 받아왔다.아버님이 서재를 정리하시면서 나의 옛사진 몇장과졸업장등을 찾아 주신것이다.40년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기억을 한다, 홍파초등학교길 건너편에 있던 호산나 유치원. 교회 부설 유치원이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원장님 선생님 친구등이 생각이난다. 이 친구중에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이 다닌 친구들이 있다.달랑 한장으로 만들어진 졸업 앨범 사진이지만 40년이란 시간을 잠시 잊게 해준다.^^혹시라도 이 사진 속 주인공 중에 이 사진을 본다면 연락 좀 주세요. 2008. 9. 8.
새로 이사한 여동생 집 캐나다에 사는 여동생이 이번에 집을 이사를 했다.처음에는 칼레도니아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을 했었는데 이번에 큰 조카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미시사가와라는 토론토 근교의 큰 도시로 이사를 하게되었다.칼레도이나집은 키들이 무척 큰 동생네 가족이 살기에는 많이 작은 타운하우스였는데 이번에제대로된(^^) 하우스로 이사를 하게되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지 모르겠다.한국의 아파트 셍활과는 너무나 다른 외국의 하우스 생활을 나도 무척 좋아한다. 좋은 동네 예쁜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가종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이웃도 좋다고 하니 다행스럽고 이웃과 즐거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정원은 사람 손 간 만큼 예뻐지니 자주 손을 보아 예쁘게 가꾸길 바라고 집도 편안하고 아늑한 집으로 만들어 주기.. 2008. 8. 24.
여동생 가족 2004년 11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교육이민을 떠났던 여동생가족. 영주권이 나올때까지 아이들과 먼저 캐나다로 떠났던 여동생이 어려운 이민생활 정착기를 잘 견디고 이제는 영주권도 나오고 가족이 모두 모여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여동생.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주는 인기 만점 아줌마. 매제. 나보다 한 살 많은데 아직까지도 나에게 형님이라고 못하는 부끄럼타는 착한 아빠. 두 사람 오래 오래 사랑하며 행복하길..... 교육이민의 최대 수혜자. 올해 원하는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고 가게되어 기쁨을 준 조카 준이. 큰 키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주길... 새침이 깍쟁이 조카 상은. 아빠 엄마에게 기쁨을 주는 착한 딸이 되기를....삼촌. 2008. 7. 21.
내 나이 50을 바라보며 내 나이 사십 중턱을 넘어 이제 오십을 바라본다.마음은 아직도 저 언덕 아래에 있는데 내 몸은 이제 고개나루를 내려가고 있다.어느새 시력은 돋보기가 필요해졌고 앉았다 일어서려면 뼈마디들이 아우성을 친다.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다.지나온 날들이 내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었기에 나는 내리막 이 길이 기대가 된다. 지나온 날들이 언덕을 오르기 위해 힘들게 하루 하루 살아 온 것이라면 이제 나머지 내리막 길은 좀 수월하게 즐기며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이 내리막이 가속이 붙어 빨리 내려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주위를 바라보며 천천히 즐기며 내려 가고 싶다. 오십을 바라보며 이제야 인생을 조금 알 것 같다. 2008. 5. 22.
아버지 아버지는 나에게 등대와 같다등대가 요란하지 않듯이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어머니께서는 늘 말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시지만 아버지께서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뭘 이야기 하고 싶어 하시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아버지와 말없는 대화를 나는 좋아한다. 말없는 대화이지만 우리 부자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다.아버지께서는 늘 그 자리에 계신다. 비바람 불어도 폭풍우가 불어도 늘 제자리를 지키는 등대처럼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가족의 중심으로 서 계신다. 그 자리에 서 계신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므로 그런 아버지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 할 수 있도록 언덕 위에서 하얀 빛을 발하고 서있는 등대처럼 아버지는 엷은 미소.. 2008. 5. 1.
바비 할머니^^ 오늘 부모님댁에 들렀다가 어머님과 잠깐 외출 할 일이 있었는데 어머님 의상이 예사롭지를 않아서 사진을 안찍을 수가 없었다.어머님 연세가 70이 넘으셨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공주님'이신데 평소에 옷을 밝은 파스텔 색으로 화사하게 입으시기는 하시지만 오늘은 완전 바비 인형 컨셉이다. 모자부터 바지까지 핑크다. 저 연세에 어지간 해서는 소화하기 힘든 칼라인데 자신있게 입고 다니시니 좋아보인다.요즘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셔서 걱정인데 건강하게 즐겁게 오래 오래 우리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Mum, I love you so much.^^ 2008. 4. 18.
크리스마스 카드 12월도 되기 전에 캐나다에 사는 여동생으로 부터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ㅎㅎ해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여동생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연말 연시를 맞는다.11월 30일. 오늘이 그 여동생 생일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여동생 생일 선물하나 변변히 사준 기억이 없다.올해도 전자 카드 하나가 달랑이다. 갑자기 많이 미안해진다.나이가 들면서 가족과 오랜 친구가 소중해진다. 지난 옛사람들도 생각이 나고 어찌 지내나 궁금해 진다.오늘은 마트로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이나 사러 가야겠다. 2007. 11. 30.
부모님 옛날사진 부모님의 옛사진 몇장을 동생이 갖고 있는것을 스캔 받았다.아버님이 사진 찍는걸 좋아 하셨더라서 사진이 참 많았는데 내가 뉴질랜드 이민 간 사이 사진 정리를 몽땅 해 버리셔서 그 많던 옛 사진이 거의 없다.아버님의 고향은 황해도 개성이신데 중학교를 서울 용산 중학교로 유학을 오셨다. 6.25 한국 전쟁 직전이니 60년 정도 된 사진이다. 1950년대 말 아버님이 군제대후 삼부 토건에서 일하실 당시 어머니를 만나셔서 양가 반대에도 결혼을 하신다. 두분다 동성 동본이시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파격적인 결혼이었다. 1960년 어머니 고향에서 결혼식후 서울로 올라오시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시며 큰이모님 내외분이랑 찍으신 사진. 어머님이 외사촌 누나랑 찍은 사진. 참 옛스럽다. 누나가 이사진 보면 넘어갈것 .. 2007.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