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창
새로운 출발을 해야하는 1,2월 내내 긴 슬럼프를 느끼고 있는 중에 아주 오랬만에 아주 특별한 대학동창을 만났다.
80학번인 우리는 당시 전 후기로 치루어지는 대학 입시에서 전기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대학인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을 하여 같은반(당시 1학년은 공대로 입학하여 2학년때 전공이 선택했습니다) 학우였는데 숫기없고 조용하던 나에게 스터디그룹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해서 만남 친구들이다 나까지 모두 5명인데 당시 915명의 공대생중 여학생은 딱 3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이 우리 스터디그룹멤버였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름 공부 좀 해보겠다고 모였는데 정치적 혼란기였던 당시에는 연일 게속되는 학내 데모에 광주사태까지 이어지면서 1학기 중간고사도 보기전에 장기 휴교조치가 내려지고 모든 시험은 리포트(과제물)로 대체가 되었습니다. 당시 지방 학생들은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우리 스터디 멤버중 나만 서울이고 모두 지방 학생들이었습니다.
경기이천이 고향인 신미남, 충남금산 출신 서문강선, 경북대구 출신 허운고, 경남구미 출신인 이성민.우리는 과제를 함께 해서 제출을 하고 고향으로 가기로 하고 매일 만나 과제물을 함께하고 토론도 함께하며 지냈습니다. 2달여 동안 열심히 함께 과제를 완성해서 제출을 하고 과제를 제출한 기념으로 유일한 여학생이던 미남이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우리 남학생들을 첫미팅을 시켜주고 여름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소개 받았던 경희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던 여학생의 제의와 친구들의 등떠밈에 밀려 81년도 초에MBC 퀴즈특급에도 출연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당시 출연했던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테잎이 있었는데 지금은 분실하여 없습니다. MBC에 문의를 하여 보니 당시 테잎은 모두 삭제되고 없다고 하는군요.^^
2학기에도 함께 만나 공부를 하던 우리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많은 시샘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귀한(?) 여학생을 독점(?)한 것에 대해서 여러번 친구들로 부터 원성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을에 성남에 있는 문무대로 1주일간 군사훈련을 들어 갈때 미남이가 우리 친구들에게 하얀손수건에 이름을 새겨주어 '아~ 미남이도 여자구나~' 하는걸 일깨워주며 작은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늘 바지만 입고 다니고 친구들을 형이라고 부르던 미남이였습니다.
2학년에는 각자 전공이 달라서 자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미남이는 재료공학, 강선이와 운구는 기계공학, 성민이는 금속공학, 나는 공업화학을 전공으로 선택을 하였고 나는 2학년을 마친후 군에 입대를 하여 그후로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군에 있는 동안 미남이는 대학원에 다니며 결혼을 했고, 성민이는 카이스트에, 강선이는 미국유학, 운구는 S전자에 취업.
그래도 남자 친구들은 이럭저럭 연락이되고 가끔 한번씩은 만났었는데 미남이는 그때 이후 25년만에 만났게 되었다.
25년만의 스터디그룹멤버의 재회. 미국에 거주하는 강선이를 제외하고 4명이 만났다. 분당 야탑에 있는미남이 회사에서 만나서 미남이가 자주 간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지나 온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내는 미남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새벽 1시가 넘었버렸다. 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반가움을 뒤로하고 헤여졌다.
사진이 흔들렸네.^^ 왼쪽이 신미남박사(FuelcellPower CEO), 오른쪽이 이성민박사(한국가스공사수석연구원)
미국공학박사, 삼성종합기술원, McKinsey 컨설턴트, 벤쳐기업CEO, 공학한림원정회원등 화려한 이력과 막강한 인맥네트워크를 소유하고 만나게된 신미남박사. 열심히 앞만보고 달려와서 과거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신박사, 그래도 우리는 미남이라고 부르는게 좋다.^^
카이스트에서 박사를 받은 후 쭈욱 한국가스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성민박사. 나와 내동생이 서로 친구를 소개해서 결혼을 하게된 인연으로 가끔은 연락을하고 만나왔던 친구다. 대학 1학년때 해박한 지식과 언변으로 나를 새로운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친구.^^ 지금도 여전히 느릿한 말투로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매력있는 친구다.
허운구. S전자에서 세탁기만 20년 넘게 개발하다가 2년전에 퇴사를 하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친구, 내가 L사에 근무하며 S전자를 담당할때 S전자에 가면 가끔 보며 지냈었는데 내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면서 소식이 끊어졌다가 귀국하면서 다시 연락이 되어 가끔 만난다. 지금도 '쌀'을 '살'이라고 밖에 발음을 못하는 대구 토박이지만 의리있고 배려심이 깊은 멋진 친구이다. 지금은 미국 LA에 거주하여 함께 못한 강선이도 언제간 함께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미남이가 자기 구역이라며 저녁을 샀다. 친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거라며 골고루 시켜서 함께 나누며 우정도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