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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이야기 (Story of Scale Model)

문화일보 기사

by Kiwiman 2020. 11. 3.

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02301031621084002

 

월남전 戰車 재현하려 수없이 웨더링 작업… 모형은 예술작품”


김영주 기자 | 2020-10-23 10:31



강신금 한국모형협회 회장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모형협회 사무실에서 1941년 6월 독일군의 해바라기밭 배식 장면을 재현한 모형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강 회장은 모형에 등장하는 해바라기 370송이를 제작하는 데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신창섭 기자




■ 강신금 한국모형협회장

모형 하나 만드는데 최대 몇 달

섬세한 작업위해 치열하게 고증
상상으로 만들면 현실감 떨어져
사진보며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

1941년 6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심장면 구현한 모형은
스토리 담아 낸 ‘디오라마’ 장르

어릴적 日 모형 본 뒤 깊게 빠져
뉴질랜드에서 유통 비즈니스도
한국 돌아와서도 모델러 길걸어



흔히 모형을 완구로 분류하지만 모형은 장난감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봐야 합니다. 모형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최소 몇 주에서 몇 달가량 섬세하게 작업하고 실재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치열한 역사 공부와 고증을 거칩니다.”

지난 9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모형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강신금 한국모형협회 회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형 불모지인 한국에 모형 문화가 대중화됐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강 회장은 “미술이나 무용이 그렇듯 모형도 취미 활동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술 활동으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창작물을 장난감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다”며 “모델러(모형 제작자)를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의 추억을 떠올리며 완구를 즐기는 키덜트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서 더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접했던 모형키트가 프라모델(조립식 모형)은 맞지만 지금은 제품이 발전해 정교함이나 조립의 용이성이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됐다고 한다. 모형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모형은 ‘조립식 모형’으로 불린다. 모델러들은 ‘프라모델’이라고 부른다. 강 회장은 “한국 대중에게 아직 모형은 생소한 영역인 것이 사실”이라며 “모형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물과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일정 크기의 조형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1990년대부터 사 모은 전 세계 각국의 프라모델들이 천장 높이까지 가득 차 있다. 그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책을 찾아보며 연구했고 역사에 대한 지식도 쌓게 됐다”며 “군사장비의 경우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형을 만들면서 구조나 모양 등을 파악하고 개발과정이나 성능도 더불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사무실 진열장에 배치된 영국 센추리온 전차의 프라모델을 조심스레 보여줬다. 모형은 작품이기 때문에 장난감처럼 쉽게 만지고 움직이는 등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철학도 내비쳤다. 영국 센추리온 전차는 6·25 전쟁 때도 참전했는데 계속 개량이 되면서 1990년까지 쓰였다고 한다. 그는 “여기 있는 것은 호주군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당시 썼던 센추리온을 만든 것인데 실전에서 쓰였던 전차와 똑같이 만들기 위해 웨더링(weathering)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웨더링은 날씨와 세월에 따른 사물의 섬세한 변화를 말한다. 다양한 색채를 덧씌우고 말린 뒤 문지른다. 실제 전차가 베트남 전장을 누비며 전차 곳곳에 먼지가 쌓이고, 긁히고, 탈색되고 녹슨 흔적을 갖고 있는데, 이런 표면을 정확하게 구현해 내기 위한 작업이다. 때로는 실제 흙과 식물을 공수해 걸리버 여행기에서나 볼 법한 사이즈의 자연환경도 재현해냈다. 강 회장은 “상상 속의 이미지로 전차에 묻은 흙을 재현하면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실제 사진을 보면서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며 “흙도 베트남 흙, 유럽 흙, 마른 흙, 진흙이 다 달라서 최대한 섬세하게 실제 특징을 구현해내려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을 들여서 탄생한 모형이니 누군가 장난감으로 대하면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는 육군에서 쓰는 ‘흑표’ 전차 모형을 보여줬다. 제작하는 데는 2주 정도 소요된 작품이다. 전차의 위장 색과 4가지 패턴을 모두 구현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상당했다고 한다. 번호판에 사단 번호와 부대 번호, 전차 번호가 모두 표기돼 있는데, 실제 전차에 부착된 번호판이 그러하듯 부대 번호는 가려져 있다. 강 회장에 따르면 대충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모델러의 자세가 아니다. 실물과 얼마나 오차 없이 만드느냐가 모형 제작의 핵심이다. 가장 알아주는 국내 모형 제작 기업인 ‘아카데미과학’에서는 많은 한국군 장비 모형 키트를 출시하고 있다. 모델러들이 한국군 장비도 모형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강 회장은 “한국군 장비에 애정이 깊은 한국 군인들이 모형에 입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비행기나 차량, 전차 같은 단일 모델뿐만 아니라 특정 장소와 시간에 스토리를 담아, 한 장면으로 재현하는 ‘디오라마’라는 장르도 있다. 강 회장은 1941년 6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러시아로 진격하면서 해바라기 밭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냈다. 370송이의 해바라기와 병사들, 배식도구, 축음기, 소총, 전차 등을 섬세하게 제작하는 데 40일이 소요됐다. 강 회장은 “독일군의 모스크바 침공 초기에는 소련군의 반격이 없어 상당한 속도로 진격이 가능했다”며 “당시 독일군이 가졌던 여유로움을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 휴대용 축음기를 배치하고 근처에 소총을 거치해 놨다”고 말했다. 

그는 “모형 제작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육군의 주력인 에이브럼스 전차 모형을 보여줬다. 현존하는 최강의 미군 전차로 평가받는 에이브럼스는 1971년 당시 주류엔진이었던 디젤 대신 항공기에 주로 사용되는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했다. 포는 105㎜ 강선포가 장착됐지만 후에 120㎜ 활강포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런 점까지 섬세하게 반영한 에이브럼스 모델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퇴직한 뒤 2017년부터 작업실에 나오기 시작한 정흥교 회원이 최근 완성한 작품이다. 강 회장은 “모형 제작은 약간의 관심과 열정만 있다면 은퇴 이후 시작해도 좋은 취미”라며 “카메라, 자전거, 낚시 등 다른 취미들보다 저렴하게 시작해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시판되는 모형 키트는 누구나 설명서를 따르면 조립할 수 있고, 도색 또한 어렵지 않다. 특히 유튜브에 모형 제작 영상이 많아 손쉽게 학습할 수 있고, 모형 동호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강 회장은 모형을 시작할 때 장비와 키트가 비쌀 것이라고 생각해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전과 달리 모형 장비 비용은 점차 저렴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정흥교 회원의 에이브럼스 전차 모형 키트는 온라인에서 2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강 회장이 이렇듯 특별한 취미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아버님이 일본에서 사오신 다미야(タミヤ)사의 전차를 보곤 쇼크를 받았다”며 “중학교 때까지 수년 동안 모형 제작에 빠져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20대 후반까지 10년 넘게 모형을 잊고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끝내고 집에 와보니 어머니가 모든 모형을 갖다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가서 하라는 말씀에 포기를 했다”며 대학 가고 군 복무 뒤 회사에 다니던 중 서점에서 우연히 모형 잡지 ‘취미가’를 접하게 되면서 다시 모형으로 빠져들었다. 1994년 회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한 모형점을 들르게 됐다. 모형 만들기에 빠져들어 현지 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결국에는 모형 유통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장난감을 갖고 논다고 치부해서였을까? 강 회장의 가족들은 사업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형에 대한 열정과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둔다. 이민 생활 10년 뒤 현지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모델러의 길을 걷게 된다. 

강 회장이 모형을 처음 접했던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은 모델러들에게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모형을 만들어도 국내에선 이렇다 할 전시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IPMS(International Plastic Modeller’s Association)는 국제적으로 가장 큰 모델러 단체다. IPMS가 해마다 가장 큰 전시회 및 대회를 주관한다. 아시아권에서는 다미야사 본사가 있는 일본 시즈오카(靜岡)의 전시회가 가장 오래됐다. 아직 국내에는 전업으로 모형 작업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장이 작다 보니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서다. 대부분 작업 공간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하는 식으로 수익 활동을 한다. 하지만 한국 모형 시장도 한 걸음 재도약할 시점에 와 있다. 강 회장은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해외 대회 및 전시회에 참가하는 국내 모델러들이 많다”며 “지속해서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